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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 story} 지인무기(至人無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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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rhans 작성일23-12-18 15:04 조회1,99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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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무기(至人無己)

히말라야 산자락에 있는 부탄이라는 나라가 있다.
전체인구가 80여만 명이고 1인당 국민소득 3,000 $ 못된다.
이 작은 나라가 요즘 각국의 '국민행복도' 조사 상위에 오른다.

부탄에는 아주 뛰어난 '왕추 크 국왕'이 있다.
이 국왕은 국정의 목표를 국내 총 생산(GDP)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국민 총행복(GNH) 지수를 높이는 것으로 잡았다.

그리고 헌법에 ‘숲은 최소한 국토의 60%로 유지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부족한 예산이지만 그 예산을 자연과 교육과 의료에 쏟아부었고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이고 의료 또한 무상이다.

국왕은 으리으리한 궁전에 사는 것도 아니고 숲 속에 있는 작은 나무집에서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신하들도 검소하게 사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다.

그 모습을 본 국민들은 남과 비교해서 내가 잘 사니, 내가 못 사니 초조해 할 일도 없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고 한다.
그 보다 놀라운 것은 지그메 싱계 왕 추크 국왕과 그 뒤를 이은 지그메 카이사르 남기엘 왕추크 국왕은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행복 정치를 펼치면서 혹여 후대를 이을 왕 중에 폭군이나 독재자가 나타날 것을 우려해서 자신들이 왕으로서의 모든 권력을 포기하고, 전제 군주제에서 입헌 군주제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먼저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알렸고, 의회에도 통보했다.

그런데 왕이 직접 자신들의 권력을 포기하고 국민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민주주의로 체제를 변경하겠다고 했는 데도, 오히려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반대 하는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국왕이 정치를 너무 잘하였기에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반대하고, 현재의 전제군주제를 고수하려고 할 정도로 부탄은 정말로 평화로운 국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들의 반대와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그메 싱계 왕추크 국왕은 국민들에게 적극적 으로 민주화를 설득했고,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지그메 카이사르 남기엘 왕추크 국왕도 국민들에게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지시키면서 의회의 반대를 일축 했다.

그리하여 왕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2008년 7월18일 세계에 유례없는 소위 하향식 민주주의가 실현되기에 이르렀다.

민주주의로 체제가 바뀌면 왕권은 자연스럽게 약해지는 것이 통례인데, 부탄도 예외는 아니었다.

헌법을 통해 왕권약화를 위한 법률이 제정 되었다.

​'부탄을 다스리는 왕추크 왕조의 국왕은 다음의 사항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민주주의를 도입하나 국왕은 그대로 유지하는 입헌군주제로 전환한다.
왕의 혈통은 이어진다.
그러나 왕의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해 왕은 65세가 되면 반드시 은퇴해야 한다.
새로운 왕이 즉위하기 전에는 부탄의 모든 국민에게 뜻을 물어 과반수면 즉위를 할 수 있다.
또한 왕이 폭정을 일삼을 때에는 의회가 왕의 폐위 투표를 개최할 수 있으며, 국민의 3분의 2가 왕의 폐위에 찬성하면 왕은 즉시 폐위된다.'

이런 규정들은 왕권을 약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되지만 애초에 국왕이 앞장서서 왕권 약화를 주도한 것이기에 이 법률은 별다른 문제없이 통과 되었다.

이러한 국왕의 과감한 개혁, 검소한 생활, 국토 구석구석까지 방문하여 국민들과 소통하는 행보, 평민과의 결혼 등에 수많은 국민들이 감동하여 왕가의 인기와 권위가 가히 절대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국왕의 결혼식이 열렸을 때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전국에서 축제를 열고 축하했을 정도였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18년 동안 능력, 수완, 헌신 및 성실함으로 8천만 독일인들을 이끌었다.

그녀가 18년 통치하면서 위반과 비리는 없었다.
그녀는 어떤 친척도 지도부에 임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예전과 다름없이 겸손했고 자신보다 앞섰던 정치인들과 싸우지 않았다.

그리고 재임 18년 동안 한결같이 그녀는 새로운 패션으로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는 메르켈에게 물었다.
"우리는 당신이 항상 같은 옷만 입고 있는 것을 주목했는데, 다른 옷은요?"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모델이 아니라 공무원입니다."

다른 기자회견에서도 기자가 물었다.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가사도우미가 있습니까?"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그런 도우미는 없고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집에서 남편과 저는 매일 이 일들을 우리끼리 합니다.”

그러자 다른 기자가 물었다.
"그럼 누가 옷을 세탁합니까? 당신입니까? 아니면 당신의 남편이 합니까?"

이에 메르켈은 대답했다.
"나는 옷을 손보고, 남편이 세탁기를 돌립니다. 대부분 이 일은 무료전기가 있는 밤에 합니다."

지금 메르켈은 다른 시민들처럼 평범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녀는 독일총리로 선출되기 전에도 이 아파트에 살았고, 그 후에도 그녀는 여기를 떠나지 않았으며, 별장, 하인, 수영장, 정원도 없다.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이 누군지 물어보면 대답이 한결같다.
어떤 국회의원은 그에게 사인받은 책을 보여주며 눈물까지 흘린다.

1946년부터 23년간 총리를 지낸 타게 엘란 데르(1901~1985)는 재임 중 11차례의 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고, 마지막 선거에서는 스웨덴 선거 사상 처음으로 과반을 넘는 득표율로 재집권 한 후 후계자 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떠난다.

정말 영화에서나 있을법한 이야기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20여 년의 장기 집권이 가능하도록 스웨덴 국민들이 신뢰를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총리시절에도 관저 대신 임대주택에서 월세를 내고 살았다.

출퇴근도 관용차 대신 어머니가 직접 운전하는 차를 이용했다.
임대주택은 자신의 재임시절 서민을 위해 지은 아파트다.

그는 특권을 버리고 국민의 삶 속으로 들어와 친구처럼, 다정한 이웃처럼 지냈다.

1968년 국민들은 다시 한번 깜짝 놀란다.

타게 엘란데르가 총리를 그만둔 후 거처할 집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당원들이 급히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한 스톡홀름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봄메쉬빅,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다.

부부는 마을 호숫가 옆 작은 주택에서 16년을 살았다.
그런데 총리시절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왔었다.

특히 우리가 경험해온 정치적 상식과는 다르게 지지자보다 반대편에 섰던 사람이 더 많이 찾았다고 한다.

타게 엘란데르는 떠났지만, 23년을 국민을 위한 그의 헌신은 스웨덴 정치의 교과서로 자리잡았고 세계 최고의 행복한 나라로 만든 원동력이 됐다.

그는 일생동안 정직, 겸손, 헌신, 대화와 타협,검소하고 특권 없는 삶을 살았다.

*부탄의 왕추크 국왕은 전제군주였고,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중도우파였고,
*스웨덴의 타게 엘란데르 총리는 급진좌파였다.

이들은 정치체제나 이념, 계파를 초월하여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추구함으로써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자신에게는 냉혹할 정도로 엄격하고 남에게는 한 없이 관대하면서 국민을 진심으로 섬기는 살신성인의 길을 걸었다.

장자 소요유 편에 지인무기 (至人無己) 라는 말이 있다.

'지극한 사람은 나, 라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나를 버리고 나면 나 아닌 것이 없다'는 말로
'나와 나 아닌 것이 하나 된 삶'을 영위하게 된다는 것이다.

Pastor Dr PKHANS 박재영

댓글목록

과유불급님의 댓글

과유불급 작성일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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