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ing story} 딜쿠샤(Dilku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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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rhans 작성일21-03-07 13:36 조회14,653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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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Dilkusha) 기쁜 마음의 궁전
102년 전이나 지금이나 언론의 중요성은 똑같다.
기미년이나 신축년이나 국가의 중요한 대소사는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고 여러나라의 도움 또한 받아야 함에도 전혀 변치 않는 진리, 참이다.
그래서 고종도 그 힘든 밀사를 여기저기 보내며 뒤늦은 참회로 안간힘을 썼던 것으로 이해된다.
기미년 그날,
만세소리가 전국을 뒤흔들 때 그 사실을 외국에 알릴 방법이 조선인, 우리로 서는 전혀 없었다.
AP통신 기자가 우연히 3.1 독립선언서를 손에 넣고 부랴부랴 동경에 가서야 3.1운동의 전모를 타전 했고, 먼 극동의 아주 작은 나라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음 을 전세계가 뒤늦게서야 알 수있었다.
'코리아'가 전 세계에 알려진 실질적인 첫 사건이었다.
이렇게 3.1운동을 전세계에 알린 AP 기자는 알버트 테일러 Albert Tayler.
그는 제암리 학살 사건도 전세계에 타전한 장본인이다.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돼 1948년 미국에서 사망한 그는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했고 유족은 그 뜻을 받들어 현재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묻혀있다.
그리고 그의 부인 메리여사는 한국에서의 생활을 아주 자세하게 써내려간 일기같은 글을 미국에서 '호박목걸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 함으로써 자신의 남편이 3.1 만세운동을 널리 알리게 된 과정을 밝혔다.
그들 부부가 살던 2층 벽돌집
'기쁜 마음의 궁전' 딜쿠샤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었고.
그 손녀딸인 제니퍼 테일러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유품 1천여점을 기증하고 현재 한국을 방문 중이다.
손녀딸 덕분에 3월 2일부터
딜쿠샤, Dilkusna,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이집을 예약자에 한 해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조부모의 유물을 천여점이나 손녀딸이 간직했다는 그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기만 하다.
대한민국, 조선은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다 태우거나 다 버려버리는데...
공적으로는 테일러 일가에 고맙다.
테일러 기자가 아니었다면 3.1운동은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고 버려져 허물어져가던 딜쿠샤가 3.1운동의 중요한 사적지로 살려 내지도 않았을 터 이리라.
이렇게 예나 지금이나
언론, 언론인의 역할은 중요하건만
이 나라의 정록직필은 언제나 살아나려나?
그리고 또 하나.
손녀딸 제니퍼가 한국기자들한테 했다는 말이다.
‘먼 옛날, 조선독립을 위해 힘쓴
미국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한국인들이 기억해준다면 더 바랄게 없을 거예요”
조선 민족의 피가 흐르는
나의 지성과 양심은 한없이 부끄러움에 이어
폐부가 찔리어진 말이다.
그리곤 참으로 오랜만에
가슴 깊은 곳에 담고 쌓아왔던
선친의 실향, 나의 원적인 북녁에 북청의 그리움이
조국이란 명제로 뜨거운 눈물을 솟게했다...
반미운동에 젖어있는 운동권,
반미를 유행에 습관처럼 여기며
친북•친중 노선에 전념하는 정권에
침묵하고 있는 Corean들 에게
이 말을 하는 그녀의 심정이 어떨까
짐작이 간다.
그래서 이렇게 한없이 미안하고 부끄럽다.
Pastor Dr HANS 박재영
102년 전이나 지금이나 언론의 중요성은 똑같다.
기미년이나 신축년이나 국가의 중요한 대소사는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고 여러나라의 도움 또한 받아야 함에도 전혀 변치 않는 진리, 참이다.
그래서 고종도 그 힘든 밀사를 여기저기 보내며 뒤늦은 참회로 안간힘을 썼던 것으로 이해된다.
기미년 그날,
만세소리가 전국을 뒤흔들 때 그 사실을 외국에 알릴 방법이 조선인, 우리로 서는 전혀 없었다.
AP통신 기자가 우연히 3.1 독립선언서를 손에 넣고 부랴부랴 동경에 가서야 3.1운동의 전모를 타전 했고, 먼 극동의 아주 작은 나라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음 을 전세계가 뒤늦게서야 알 수있었다.
'코리아'가 전 세계에 알려진 실질적인 첫 사건이었다.
이렇게 3.1운동을 전세계에 알린 AP 기자는 알버트 테일러 Albert Tayler.
그는 제암리 학살 사건도 전세계에 타전한 장본인이다.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돼 1948년 미국에서 사망한 그는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했고 유족은 그 뜻을 받들어 현재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묻혀있다.
그리고 그의 부인 메리여사는 한국에서의 생활을 아주 자세하게 써내려간 일기같은 글을 미국에서 '호박목걸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 함으로써 자신의 남편이 3.1 만세운동을 널리 알리게 된 과정을 밝혔다.
그들 부부가 살던 2층 벽돌집
'기쁜 마음의 궁전' 딜쿠샤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었고.
그 손녀딸인 제니퍼 테일러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유품 1천여점을 기증하고 현재 한국을 방문 중이다.
손녀딸 덕분에 3월 2일부터
딜쿠샤, Dilkusna,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이집을 예약자에 한 해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조부모의 유물을 천여점이나 손녀딸이 간직했다는 그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기만 하다.
대한민국, 조선은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다 태우거나 다 버려버리는데...
공적으로는 테일러 일가에 고맙다.
테일러 기자가 아니었다면 3.1운동은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고 버려져 허물어져가던 딜쿠샤가 3.1운동의 중요한 사적지로 살려 내지도 않았을 터 이리라.
이렇게 예나 지금이나
언론, 언론인의 역할은 중요하건만
이 나라의 정록직필은 언제나 살아나려나?
그리고 또 하나.
손녀딸 제니퍼가 한국기자들한테 했다는 말이다.
‘먼 옛날, 조선독립을 위해 힘쓴
미국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한국인들이 기억해준다면 더 바랄게 없을 거예요”
조선 민족의 피가 흐르는
나의 지성과 양심은 한없이 부끄러움에 이어
폐부가 찔리어진 말이다.
그리곤 참으로 오랜만에
가슴 깊은 곳에 담고 쌓아왔던
선친의 실향, 나의 원적인 북녁에 북청의 그리움이
조국이란 명제로 뜨거운 눈물을 솟게했다...
반미운동에 젖어있는 운동권,
반미를 유행에 습관처럼 여기며
친북•친중 노선에 전념하는 정권에
침묵하고 있는 Corean들 에게
이 말을 하는 그녀의 심정이 어떨까
짐작이 간다.
그래서 이렇게 한없이 미안하고 부끄럽다.
Pastor Dr HANS 박재영
댓글목록
beijing님의 댓글
beijing 작성일글 올라오길 기다렸습니다~ 항상 좋은 내용 김사합니다
남산님의 댓글
남산 작성일감동적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