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사다리 7단계 : 성취]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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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LD 작성일21-12-23 16:49 조회5,171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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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갑자기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던 순간을 맞이한 적이 있나요? 현직에 있었던 30여 년 동안 특수한 직업으로 인해 조종사 선후배 동료들이 안타깝게 사망한 소식을 종종 들었다. 순직한 분 누구도 그날의 비행이 생의 마지막이 될지는 몰랐다.
1983년 늦여름 공군사관생도 시절, 남해 상공에서 비행기 날개가 부러지면서 바다 위로 추락하여 기체와 조종사가 산산조각이 난 안타까운 사고 소식을 처음으로 전해 들었다. 그 당시에 선배 생도의 순직 소식을 듣고 수첩에 적어 놓았던 글을 꺼내어 당시의 애틋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시 읽어 보았다.
“어느 비 내린 다음 날, 소식이 있었지요. 누가 죽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의 선배라고 합니다. 아주 멋있게 살다 갔어요. 파란 하늘에 머물다가 그곳에서 영원히 잠들었어요. 우리 이야기예요. 어쩌면 우리 이야기예요.”
그 비행사고가 있은 지 몇 년 후, 나도 어렵고 힘들었던 2년간의 비행교육훈련을 마치고 전투기조종사가 되었다. 전투기에 시동이 걸리고 날아오르면 뜨거운 불덩이가 맹속도로 가속되어 엄청난 에너지 덩어리가 된다. 항공기 날개와 몸체에는 폭발성이 강한 항공유 수십 드럼이 가득 차 있다. 불붙은 엔진은 점화된 용광로와 같은 화염 덩어리가 소리속도보다 빠르게 폭음과 화염을 뿜어내면서 수십 톤에 달하는 쇳덩이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시동이 걸린 전투기는 붉은 피를 본 투우장의 황소처럼 거칠고 힘이 세어 다루기가 매우 어렵다. 잘 훈련된 조종사는 노련한 투우사처럼 전투기를 달래고 달래서 원하는 방향과 속도로 조종한다. 조금의 방심도 허락되지 않는다. 흥분한 황소는 준비가 부족하거나, 방심하는 투우사에게 크고 작은 부상을 입히거나, 심지어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전투기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전투효율을 내는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그래서 조종사는 일정 부분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기체는 빠른 속도와 민첩한 기동력을 내도록 설계되었다. 그래서 조종석은 매우 좁다, 최대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서 조종사의 최대 능력과 부지런함을 요구한다. 그만큼 조종사의 뛰어난 역량과 피눈물 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전투조종사는 마치 삐진 친구와 함께하듯이 크고 작은 위험과 생명의 위협을 언제나 같이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비행을 시작한 후 ‘라스트 찬스’(Last Chance)라는 단어를 모자챙 안쪽에 잘 보이도록 크게 새겨 놓았다. 모자를 쓰고 벗을 때마다 속으로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다.’라고 되뇌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말이다.
라스트 찬스란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최종적으로 이상이 없는 지를 확인하고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말한다. 라스트 찬스 점검은 비행기가 이륙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지상에서 공중으로 올라가기 전 안전을 위한 최종점검을 한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 활주로에 올라서서 속도를 가속한다. 지상을 힘차게 박차고 올라간 비행기는 속도와 고도를 급격하게 올리면서 검푸른 창공으로 치솟는다. 만약 비행기가 이륙하는 중에 갑자기 비상상황이 생기면 느린 속도와 낮은 고도로 인해 조종사와 항공기가 가장 위험한 상황에 돌입하게 된다. 그래서 라스트 찬스 점검은 안전한 비행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전투기조종사로 보낸 30여 년간, 수십 대의 전투기와 수십 명의 조종사가 비행사고로 순직했다.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 될 줄 모르고 비행임무를 부여받고 하늘로 올라갔다가 지상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 지금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하면서 지내고 있다. 내 모자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던 라스트 찬스처럼 내게 주어진 오늘은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
카르페디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지금이 가장 큰 선물이다.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아라. 왜냐하면 이 순간이 바로 내 삶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매일 매일을 살아보니 후회하고 집착하는 일이 줄었다. 그리고 현재에 충실하며 미래를 준비하니 내게 어떤 일이 닥쳐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자유다.” 나의 신조였던 라스트 찬스는 내게 삶에 대한 최선, 희망, 행복, 감사, 초연, 평온, 자유 등 여러 긍정의 가치를 가르쳐주었다.
지금 눈을 감으면 내일 다시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다. 오늘도 내 인생의 마지막을 맞는 것처럼 잠자리에 든다. 내일 깨어나지 않아도 전혀 후회하지 않을 것처럼. 나도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그래서 나도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