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 행복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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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LD 작성일20-02-04 15:32 조회3,50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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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도, 막상 행복에 대해 짧게 정리하기가 쉽지가 않다.
행복에 대한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넘쳐나기도 하지만, 그만큼 행복이라는 개념이
어느 상황을 특정하여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행복에 대한 정리가 잘 된 자료를 보면 항상 탐이 난다. 몇 일전에 페친이신
이화여대 윤정구 교수님이 행복의 본질에 대해 정리하여 올리신 글도 참 잘 설명된
글이다. 그래서 교수님께 동의를 구하고 글을 소개한다.
SLD행복연구소
행복사다리
정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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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의 본질
이화여자대학교 윤정구 교수
행복이라고 하면 맛난 것 먹고 일하지 않고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것과 관련된 것들을 많이 생각하지만 이와 같은 소소한 행복도 삶에서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 있을 때만 약속한 행복을 가져다 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가장 심도 있게 분석한 철학자이다. 그는 행복을 유데모니아(eudaimonia)라고 칭했다. 유데모니아는 자신을 존재의 수준에서 차별화 시키는 삶의 목적을 각성하고 이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 목적을 현재 자신의 삶과 일로 가져와서 실현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유데모니아는 현재 자신의 삶에서 목적이 조금씩 실현되어 자신이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결과적으로 <번성>하는 체험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추구하는 수월성(arete 아르떼; 영어의 excellence)이란 말도 어떤 달성된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수월성이란 어제에 비해 오늘 나는 목적에 좀 더 가까워져 있고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더 목적에 더 가까워져서 인격적으로 조금씩 더 성숙해지는 상태 즉 되어감(Becoming)의 상태로 규정한다. 번성과 성숙은 고사하고 우리 삶이 지속적으로 쪼그라드는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본 것이다. 이런 본질적 행복과 차별되는 순간적 쾌락을 가져다주는 소확행의 행복을 헤도니아(hedonia)라고 보았다.
아리스트텔레스는 삶의 목적을 각성하지 못한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보았다.
우리가 행복의 원천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소확행은 유데모니아가 전제되어야 행복을 가져다 준다. 한때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떠나서 여행을 즐기는 삶은 소확행이고 열심히 일한 당신과 관련된 부분은 여행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유데모니아이다. 열심히 일함을 통해 스스로 성장체험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매일 여행만 다닌다는 것은 차라리 지루한 고역에 가깝다. 불금이 기다려지고 즐거운 이유는 주중에 유데모니아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마치 주요리를 먹지 않고 디저트만 먹게 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디저트가 달고 맛이 있다고 주요리를 건너 뛰고 디저트만 먹는다면 어느 순간 디저트가 고역이 될 것이다. 자신이 재력과 시간여유가 있어서 유데모니아 없는 소확행을 지속적으로 즐길 수 있다하더라도 이 소확행은 결국 햇빛과 같다. 햇빛이 쨍쨍한 날을 갈망해도 매일 매일 해가 쨍쨍 뜨는 삶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삶은 사막화 되어 금방 황폐해진다.
삶의 목적을 자신의 일과 삶을 통해서 실현시키는 성장체험인 유데모니아가 행복의 본질이라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행복에 관한 몇 가지 의미 있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첫째, 보통 사람들이 결혼을 통해서 행복을 찾는다고 이야기하지만 이것이 실현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결혼생활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남편과 아내는 결혼후 공히 2년간의 행복의 증가를 경험한 후 이후에는 결혼 이전의 행복치 값으로 환원되었다. 결국 결혼이 행복을 증진시키는 기간은 2년을 넘지 못한다. 같이 오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결혼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명제다. 대부분 부부들에게서는 어느 순간 남편과 부인이 결혼생활을 통해 서로를 성숙시키는 유데모니아가 끊어지자 부부싸움을 시작했다. 서로에 대한 유데모니아 체험을 할 수 없다면 결혼생활은 그냥 지루한 일상에 불과할 뿐이다.
둘째, 돈, 명예, 권력 등을 획득하는 것이 행복을 키워줄 것이라는 명제는 잘못된 것이다. 톱니바퀴효과와 사막효과 때문이다. 돈, 명예, 권력을 획득하면 획득한 상태를 당연한 상태로 받아들이는데 걸리는 몇 주 정도는 행복하다. 하지만 새로운 상태에 적응된 후에는 더 나은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서 기대치를 높히는 톱니바퀴적 성향 때문에 점점 더 큰 것을 얻어야 행복해진다. 얻은 댓가로 짧게 행복한 기간을 지내다 더 긴 기간동안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런 톱니바퀴 효과에도 돈, 명예, 권력을 포기하지 못하면 이것들은 매일 내리 쬐는 햇빛에 되어 삶을 지속적으로 사막화시킨다.
셋째, 행복은 자신의 성장체험과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지만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성장체험을 한 경우에도 얻어진다. 목적은 자신이 세상을 다녀 갔기 때문에 세상이 더 행복해지고 더 건강해지고 더 아름다워지는 상태를 구현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이 성장한 결과로 이런 상태가 만들어지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소통이 더 활발해진다면 최고의 행복한 상태를 체험한다. 설사 돈을 가지고 행복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 돈을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성장체험을 나눠주고 싶은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쓸 때이다.
넷째, 행복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규정했듯이 성장체험을 통해 더 성숙해짐에 대한 되어감을 통해서 증진된다. 학자들은 다양한 실험에 의하면 목표자체의 달성보다는 달성하는 과정이 사람들에게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을 규명했다. 목표달성에 집중하다보면 항상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쳇바퀴에 빠쳐 자신이 시지프시 신화의 언덕에 바위굴리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다섯째,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살기" 와 같은 회피목표를 주로 추구하는 사람들은 뭔가를 이루기 위한 성취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보다 덜 행복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성장체험의 본질은 지속적 학습을 통한 성장과 성숙이지 실수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회피목표는 성장체험에 대한 가장 큰 암덩어리이다.
여섯째, 행복한 사람들은 항상 배를 만들거나 교향곡을 작곡하거나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화단을 가꾸거나 사막에서 공룡의 알을 찾거나 악기를 배우거나 등의 자신만의 일인칭 프로젝트에 빠져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일인칭 프로젝트가 행복을 가져오는 이유는 바로 남이 아닌 <자신의> 삶의 존재이유인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한 핵심과제이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일인칭 프로젝트가 중요한 이유는 남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이 자신의 목적에 집중하게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적이 이 프로젝트 면면에 개입해 면면의 의미를 살려내고 자신에게 내재한 열정을 활성화시킨다. 우울증은 이런 프로젝트 없이 자신의 늪에 빠진 사람들의 문제였다.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다.
단 자신을 존재의 수준에서 차별화 시킬 수 있는 목적을 각성했고
이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한 자신만의 일인칭 프로젝트가 있다는 유데모니아의 조건하에서 이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도 모르는데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는 격이다. 내 삶이 나의 내재적 기준에 의해서도 지속적으로 쪼그라들고 있는데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이 유데모니아가 없는 소확행에 빠져 살다가 결국 삶이 사막화 되면 무언가 더 심각한 것에 자신을 중독시킨다. 소확생으로 행복을 쫓는 것은 영원히 잡을 수 없는 파랑새를 쫓는 것과 같다.
* 이글은 이화여대 윤정구 교수님의 페이스북에서 동의를 구하고 공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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